



사람도 나무도 한길 속 알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저마다 둥근 데와 더불어 모난 구석이 있기에, 그 자체로 특별하지요.
목공예가 임형묵은 작업에서 나무가 가진 고유한 생김새를 살리고자 합니다. 돌멩이를 닮은 나무 조각 ‘목멩이’와 기와의 곡선을 담은 ‘와瓦’ 시리즈까지, 옹이나 갈라진 자국은 그의 손을 거쳐 특별한 흔적이 되고, 비정형으로 깎은 곡선 속엔 자유롭고 다붓한 마음이 깃듭니다. 작가가 묵묵히 쌓아온 시간의 켜는 어느덧 나무의 결과 포개집니다. 부암동 작업실에서 전해 받은 온기 어린 잔상을 이곳에서 다시 전합니다.

작가님 소개를 부탁드려요.
묵묵히 나무를 만지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나무를 중심으로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탐구하며, 작은 사물부터 가구까지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어요.
여러 소재 중에서도 나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무가 주는 따뜻한 촉감과 감성이 좋았어요. 같은 종류의 나무여도 자라는 환경에 따라서 색과 결이 다른데, 그 점도 참 매력적이고요. 그리고 페어를 나가보면 많은 사람이 나무로 만든 작품은 꼭 한 번씩 만져보세요. 나무는 우리에게 본능적으로 친근한 감각을 주는 소재인 거 같아요.
그런 나무의 매력을 어떻게 표현하고 계신가요?
나무를 돌멩이 형태로 깎아 만드는 ‘목멩이’에서는 나무의 흠을 오히려 드러내고 강조해요. 일반적으로 하자라고 여겨지는 옹이나 갈라진 부분이, 목멩이에게는 고유한 존재감을 부여하거든요. 자그마한 크기라 손에 쥐고 나무의 결과 무게, 온기를 피부로 간직할 수 있는 일상 사물이기도 하죠.
또 낙동 기법을 활용해 나무의 숨은 결을 보여줘요. 낙동은 무른 오동나무의 겉을 태워서 약한 부분은 날리고 단단한 부분만 남기는 전통 기법인데, 저는 이 기법을 활용해 나무의 결을 뚜렷하게 드러내요. 나무를 태운 후 먹으로 칠해 새카맣게 마무리하면 나이테가 선명하게 보여서 나무가 한 해 한 해 살아온 과정을 떠올려볼 수 있어요.

목멩이는 어떻게 만들게 되셨어요?
자투리 나무들을 버리지 못하고 모아두고 있다가 문득 돌멩이 형태가 떠올라서 조각해 봤어요. 목멩이는 작업이자 취미예요. 머리가 복잡하거나 기계 작업에 몰두하느라 손의 감각이 무뎌지는 거 같으면 조각칼을 들고 나무를 깎아요. 사각사각 소리를 들으며 몰입하다 보면 명상처럼 머릿속이 비워지거든요. 에디션 개념으로 번호를 새겨 시리즈로 만들고 있고, 지금은 187번까지 나왔어요.

목멩이와 와(瓦)시리즈, 비정형 시리즈까지. 작업에 곡선이 많이 등장하는 거 같아요.
예전에는 직선 위주의 작업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런데 최근에는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면서 곡선 형태의 디자인을 많이 구상하고 있어요. 비정형 작업은 같은 제품이라도 매번 선이 조금씩 달라서 작업할 때마다 새롭고 흥미로워요. 정해지지 않은 형태가 우리 인간의 모습 같기도 하고요. 불안정하고 완벽하지 않은 모습이 가장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으로 느껴져요.


마음이 직선에서 곡선으로 변한 계기가 있을까요?
자연으로 둘러싸인 부암동 작업실에서 5년 정도 지내고 산책도 많이 하다 보니 자연의 유순한 형태들이 무의식적으로 스며든 것 같아요. 그 영향인지 MBTI도 J(계획형)에서 P(즉흥형)로 바뀌었거든요. 공방에서 쓰는 가구들도 대부분 제가 만든 것인데, 벽면에 걸린 공구 거치대가 J였던 시절의 유작이라고 할 수 있어요. (웃음) 공구마다 저만 아는 위치가 있어서 정리할 때의 쾌감이 있죠.


작업 과정도 궁금해요. 비정형 트레이는 어떻게 탄생하나요?
커다란 나무판을 대략적인 크기로 재단한 후, 거친 면을 매끄럽게 가공해요. 그다음 손으로 형태를 스케치하고 기계로 오리는데, 이 과정에서 즉흥성이 들어가서 조금씩 다른 선이 나오죠. 속을 파내어 깊이를 만들고 원하는 텍스처와 느낌이 나올 때까지 사포질하여 마감합니다. 뚜껑이 덮이는 함盒의 형태는 차 도구 같은 소중한 기물을 담기에 좋아요.

작품에 담긴 작가님만의 디테일을 하나 소개해 주세요.
기와의 곡선 형태를 모티브 한 인센스 홀더 시리즈인, ’와瓦'에서는 홀더와 같은 곡선 라인을 가진 미니 브러쉬도 세트로 만들었어요. 향을 다 피운 후 남은 재를 브러쉬로 쓸어내고 홀더 위에 올려두면 굴곡이 맞물려 깔끔하게 보관할 수 있어요. 홀더는 양면으로 구멍의 크기가 달라서 선향과 죽향 모두 사용할 수 있고요.


작업하면서 가장 고된 순간은 언제인가요?
가재단할 때마다 신경이 예민해지는 편이에요. 커다란 나무판이 들어오면, 어떻게 사용할지 계획을 잘 세운 후 잘라두어야 남는 부분을 최대한 줄일 수 있거든요. 그리고 겉으로 봐서는 나무 속을 알 수 없어서 긴장되기도 하고요. 8년 정도 작업했지만, 아직도 나무는 어렵고 낯설 때가 많아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처음 말씀하셨던 '묵묵하게 나무를 만집니다.’라는 소개가 다시 떠올라요. 작가님과 참 잘 어울린다는 말이네요.
나무 작업을 시작한 초반에는 계획을 철저히 세우고 결과에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예상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고요. 하지만 삶이라는 게 늘 계획대로 흘러가진 않잖아요. 어느 순간 내가 즐겁게 작업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작업 과정에 집중하며 결과에는 크게 얽매이지 않으려 노력하기 시작했어요.
또 그즈음 두 동료와 한 달에 한 작품씩 완성해 소개하는 ‘월간 오브제'라는 프로젝트를 했었는데,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3년을 꾸준히 이어갔더니 작업자로서 필요한 기본기를 다지는 데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그런 시간을 거치며 묵묵함이 제가 지켜야 할 기질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올해의 계획이 있다면요?
나무 작업은 몸을 많이 쓰는 일이기도 해서 체력을 조금 더 기르고 건강을 잘 챙기려고 해요. 올해도, 10년 후에도, 그저 묵묵하고 꾸준히 작업을 이어가고 싶어요.


사람도 나무도 한길 속 알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저마다 둥근 데와 더불어 모난 구석이 있기에, 그 자체로 특별하지요.
목공예가 임형묵은 작업에서 나무가 가진 고유한 생김새를 살리고자 합니다. 돌멩이를 닮은 나무 조각 ‘목멩이’와 기와의 곡선을 담은 ‘와瓦’ 시리즈까지, 옹이나 갈라진 자국은 그의 손을 거쳐 특별한 흔적이 되고, 비정형으로 깎은 곡선 속엔 자유롭고 다붓한 마음이 깃듭니다. 작가가 묵묵히 쌓아온 시간의 켜는 어느덧 나무의 결과 포개집니다. 부암동 작업실에서 전해 받은 온기 어린 잔상을 이곳에서 다시 전합니다.
작가님 소개를 부탁드려요.
묵묵히 나무를 만지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나무를 중심으로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탐구하며, 작은 사물부터 가구까지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어요.
여러 소재 중에서도 나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무가 주는 따뜻한 촉감과 감성이 좋았어요. 같은 종류의 나무여도 자라는 환경에 따라서 색과 결이 다른데, 그 점도 참 매력적이고요. 그리고 페어를 나가보면 많은 사람이 나무로 만든 작품은 꼭 한 번씩 만져보세요. 나무는 우리에게 본능적으로 친근한 감각을 주는 소재인 거 같아요.
그런 나무의 매력을 어떻게 표현하고 계신가요?
나무를 돌멩이 형태로 깎아 만드는 ‘목멩이’에서는 나무의 흠을 오히려 드러내고 강조해요. 일반적으로 하자라고 여겨지는 옹이나 갈라진 부분이, 목멩이에게는 고유한 존재감을 부여하거든요. 자그마한 크기라 손에 쥐고 나무의 결과 무게, 온기를 피부로 간직할 수 있는 일상 사물이기도 하죠.
또 낙동 기법을 활용해 나무의 숨은 결을 보여줘요. 낙동은 무른 오동나무의 겉을 태워서 약한 부분은 날리고 단단한 부분만 남기는 전통 기법인데, 저는 이 기법을 활용해 나무의 결을 뚜렷하게 드러내요. 나무를 태운 후 먹으로 칠해 새카맣게 마무리하면 나이테가 선명하게 보여서 나무가 한 해 한 해 살아온 과정을 떠올려볼 수 있어요.
목멩이는 어떻게 만들게 되셨어요?
자투리 나무들을 버리지 못하고 모아두고 있다가 문득 돌멩이 형태가 떠올라서 조각해 봤어요. 목멩이는 작업이자 취미예요. 머리가 복잡하거나 기계 작업에 몰두하느라 손의 감각이 무뎌지는 거 같으면 조각칼을 들고 나무를 깎아요. 사각사각 소리를 들으며 몰입하다 보면 명상처럼 머릿속이 비워지거든요. 에디션 개념으로 번호를 새겨 시리즈로 만들고 있고, 지금은 187번까지 나왔어요.
목멩이와 와(瓦)시리즈, 비정형 시리즈까지. 작업에 곡선이 많이 등장하는 거 같아요.
예전에는 직선 위주의 작업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런데 최근에는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면서 곡선 형태의 디자인을 많이 구상하고 있어요. 비정형 작업은 같은 제품이라도 매번 선이 조금씩 달라서 작업할 때마다 새롭고 흥미로워요. 정해지지 않은 형태가 우리 인간의 모습 같기도 하고요. 불안정하고 완벽하지 않은 모습이 가장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으로 느껴져요.
마음이 직선에서 곡선으로 변한 계기가 있을까요?
자연으로 둘러싸인 부암동 작업실에서 5년 정도 지내고 산책도 많이 하다 보니 자연의 유순한 형태들이 무의식적으로 스며든 것 같아요. 그 영향인지 MBTI도 J(계획형)에서 P(즉흥형)로 바뀌었거든요. 공방에서 쓰는 가구들도 대부분 제가 만든 것인데, 벽면에 걸린 공구 거치대가 J였던 시절의 유작이라고 할 수 있어요. (웃음) 공구마다 저만 아는 위치가 있어서 정리할 때의 쾌감이 있죠.
작업 과정도 궁금해요. 비정형 트레이는 어떻게 탄생하나요?
커다란 나무판을 대략적인 크기로 재단한 후, 거친 면을 매끄럽게 가공해요. 그다음 손으로 형태를 스케치하고 기계로 오리는데, 이 과정에서 즉흥성이 들어가서 조금씩 다른 선이 나오죠. 속을 파내어 깊이를 만들고 원하는 텍스처와 느낌이 나올 때까지 사포질하여 마감합니다. 뚜껑이 덮이는 함盒의 형태는 차 도구 같은 소중한 기물을 담기에 좋아요.
작품에 담긴 작가님만의 디테일을 하나 소개해 주세요.
기와의 곡선 형태를 모티브 한 인센스 홀더 시리즈인, ’와瓦'에서는 홀더와 같은 곡선 라인을 가진 미니 브러쉬도 세트로 만들었어요. 향을 다 피운 후 남은 재를 브러쉬로 쓸어내고 홀더 위에 올려두면 굴곡이 맞물려 깔끔하게 보관할 수 있어요. 홀더는 양면으로 구멍의 크기가 달라서 선향과 죽향 모두 사용할 수 있고요.
작업하면서 가장 고된 순간은 언제인가요?
가재단할 때마다 신경이 예민해지는 편이에요. 커다란 나무판이 들어오면, 어떻게 사용할지 계획을 잘 세운 후 잘라두어야 남는 부분을 최대한 줄일 수 있거든요. 그리고 겉으로 봐서는 나무 속을 알 수 없어서 긴장되기도 하고요. 8년 정도 작업했지만, 아직도 나무는 어렵고 낯설 때가 많아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처음 말씀하셨던 '묵묵하게 나무를 만집니다.’라는 소개가 다시 떠올라요. 작가님과 참 잘 어울린다는 말이네요.
나무 작업을 시작한 초반에는 계획을 철저히 세우고 결과에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예상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고요. 하지만 삶이라는 게 늘 계획대로 흘러가진 않잖아요. 어느 순간 내가 즐겁게 작업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작업 과정에 집중하며 결과에는 크게 얽매이지 않으려 노력하기 시작했어요.
또 그즈음 두 동료와 한 달에 한 작품씩 완성해 소개하는 ‘월간 오브제'라는 프로젝트를 했었는데,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3년을 꾸준히 이어갔더니 작업자로서 필요한 기본기를 다지는 데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그런 시간을 거치며 묵묵함이 제가 지켜야 할 기질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올해의 계획이 있다면요?
나무 작업은 몸을 많이 쓰는 일이기도 해서 체력을 조금 더 기르고 건강을 잘 챙기려고 해요. 올해도, 10년 후에도, 그저 묵묵하고 꾸준히 작업을 이어가고 싶어요.